ⓒPhotograph By Hwang ManBok, 2011
판소리의 기원의 종류와 특성 - 황만복
1. 머리말
판소리 전성시대. 불과 몇 년 전 판소리는 대중들에게 널리 사랑을 받는 전통예술이었다. 판소리에 담긴 해학과 풍자성, 그리고 전통적인 한국인의 정서가 목소리에 담겨있던 모습은 대중의 관심을 사기에 충분했다. 세계로부터 갈채를 받고있는 일본의 전통인형극인 분라쿠에 못지않게 우리의 판소리의 예술성도 무척 뛰어나다. 일본의 분라쿠가 공연예술로서의 특성만을 띄고있다는 점에서 판소리는 대중들과 호흡하며 함께 만들어간다. 따라서 판소리가 대중예술로서 더욱 뛰어나다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오늘날 판소리의 촛불이 흔들리고 있다. 새로운 장르에 대한 관심을 보이는 유동적인 대중들의 특성 때문일 수도 있겠지만, 정확한 것은 판소리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많이 줄었다는 것이다. 유년시절에 많이 읽는 전래동화들이 현대에 접어들어서 관심이 줄었다는 것도 그 원인 중 하나라고 볼 수 있다. 또, 유동적인 대중들의 관심을 끌기 위한 자극적이고 부르기 쉬운 음악들이 창작되면서 판소리의 관심이 점차 줄고있다.
높은 곡조, 꺾임, 그리고 한국인들의 정서에 대한 음악은 여전히 사랑받고 있다. 이러한 것들이 바로 판소리와 판소리에 담긴 정서들이 오늘날의 방식으로 변형되어 나타난 모습은 아닐까. 우리의 전통 예술을 우리 스스로 지키겠다는 마음으로 판소리에 대한 많은 관심을 가져야 한다. 다시말해 판소리의 기원에 대한 연구를 통해 오랫동안 전승되어 오던 우리의 정서와 소리의 기원을 찾고 이러한 것들이 오늘날 어떻게 변해왔는지 알아보고자 한다.
2. 판소리의 기원의 종류
2.1. 무가 기원설(巫歌 起源說)
무가기원설은 판소리가 '무가'라는 한 장르로부터 영향을 받아 형성되지 않았을까 하는 물음에서 출발한 가설이다. 이 가설은 무가와 판소리를 비교하여 그 신빙성을 입증하고 있다. 무가는 신(神)과 인간을 연결하는 하나의 장이다. 무가에서 신과 인간을 연결하는 매개자가 '무당'이라면, 판소리에서 이야기와 사람들 사이를 잇는 역할을 소리꾼이 한다는 점에서 유사하다. 또한 소리꾼의 쉰 목소리, 고수의 장단과 계면조, 시나위 조의 선율 구성음과 무당의 춤사위들이 서로 유사한 모습을 보인다. 밀폐된 공간이 아닌 개방된 공간, 다시말해 공개된 하나의 큰 장을 이루어 청중과의 소통을 이끌어낸다는 점에서 공연예술로서 두 모두 하나의 목적을 추구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두 장르의 구성 요소를 비교해볼 때 또 다른 유사한 점을 발견할 수 있다. 판소리에서 다루는 이야기의 내용은 보통 '권선징악'의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다. 다시말해, 주인공들은 외부적으로 많은 시련을 겪고 그것으로부터 고통스러운 모습을 보이지만, 결과적으로 주인공들은 극적으로 그 시련들을 이겨내고 행복으로 도달한다. 무가도 이와 유사하다. 어떤 질병이나 원한 관계에 대해서 무당이라는 매개자를 통해 인간과 신의 만남이 이루어진다. 이러한 과정 속에서 인간은 현재 겪고있는 시련으로부터 극복하고 탈피하는 구조로 구성되어 있다.
판소리와 무가는 주로 전라도 권에서 밀집되어 있다. 무가의 전승 방법은 '강신무'와 '세습무'로 나누어져 있다. 강신무는 흔히 '신내림'이라 일컫는데, 하나 이상의 신과 인간을 연결하는 의식을 통해 무당이 되는 방법이다. 반면에 세습무는 무당가계로부터 내려오는 전문적인 훈련을 통해 비로소 무당이 될 수 있다. 대부분의 판소리 전승구조는 이런 세습무의 구조를 취하고 있다. 또한 세습무의 전승 지역이 주로 전라도권이며, 판소리의 활동이 활발했던 지역 역시 같은 지역임을 볼 때 두 장르 사이가 유사하게 일치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판소리와 판소리 창자가 밀집한 지역이 무가의 시나위 권과 유사하다. 무당들이 굿판을 벌일 때 옆에서 악기를 연주하는 패들을 어떤 지역에서 시나위라고 한다. 이렇게 시나위라고 불리는 지역을 '시나위 권'이라고 하는데, 이 시나위 권은 경기도 남부, 충청도, 전라도, 경상도 서부 지역을 일컫는다. 판소리를 이끄는 창자의 출생지가 보통 이 시나위 권이었고 이 지역으로부터 판소리가 성행하였다.
2.2. 육자배기토리 기원설
육자배기는 전라도 지방을 중심으로 한 남도의 잡가이다. 잡가는 조선 후기에 서민층을 중심으로 성행하던 민속악을 말하는데 다시말해, 육자배기는 전라도 권을 중심으로 밀집되어있는 서민들이 부르던 남도의 노래다. 육자배기는 농요(農謠)의 한 갈래로서 한국의 대표적인 민요다. 이 육자배기는 남도지역의 음악적 특성을 지니고 있는데 이 중 이 지역의 독특한 음악적 요소와 원리들을 '육자배기토리 1'라고 일컫는다. 육자배기는 떨림, 꺾어 흘러내리기 등 흥미로운 기교적 구조를 갖추고 있는데, 이것이 바로 남도 지역의 독특한 음악적 요소이다.
음악학적인 요소로 비교해 볼 때, 판소리와 육자배기토리는 유사한 모습을 갖추고 있다. 2 이 육자배기토리 기원설은 판소리의 기원에 있어 무가기원설을 음악학적인 면으로 구체화한 것이다. 두 장르 사이에 유사한 음악학적인 구성을 통해 판소리의 기원을 서민들의 삶과 생활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무가 역시 육자배기토리의 구성으로 되어있어 무가 기원설에 대한 신빙성을 한층 더한다고 말할 수 있다.
2.3. 광대소학지희 기원설(廣大笑謔之戱 起源說)
궁중은 해마다 군신 상하간의 친목을 도모하면서 그 구분을 분명히 하는 잔치 의식을 벌였는데, 이것이 바로 연례행사이다. 이 연례행사 중 가장 큰 행사는 '나례(儺禮)' 인데, 이 행사는 고려때부터 이어 내려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나례는 음력 섣달 그믐날에 민가와 궁중에서 묵은해의 잡귀를 몰아내기 위해 벌이던 의식으로 '구나(驅儺)·대나(大儺)·나희(儺戱)' 라고도 한다. 다시말해, 연말에 사악한 귀신을 쫓는 의식을 하여 국가의 안녕과 태평을 기원하는 일종의 국가적인 대 굿이었다. 초창기에 이 나례는 의식을 중점으로 이루어졌으나 점차 연예 오락과 곡예가 섞인 대규모적인 행사로 발전하였다.
나례에는 '규식지희(規式之戱)'와 '소학지희(笑謔之戱)'가 있었다. 곡예 중심의 놀이를 규식지희라 하고, 연예 오락 중심의 놀이를 소학지희라 하였다. 이 중 소학지희가 지닌 구성과 형태가 지금의 판소리와 흡사하고, 따라서 판소리의 기원이 소학지희로부터 전승된 것은 아닐까 라는 질문에서 세워진 가설이 광대소학지희 기원설이다.
소학지희는 주로 광대들로 이루어져 있었다. 광대들은 각각의 재주를 궁중에서 펼쳐보였고, 그 중 어떤 광대 집단들은 남도 무가의 음악과 양식을 사용하여 긴 노래로 만들어 부르기도 하였다. 그들이 부르는 노래의 주된 내용은 각 지역의 설화였고, 육자배기토리의 음악과 양식을 사용하였다. 또, 소학지희에서는 수많은 악기 반주가 곁들어져 있었는데 이는 판소리의 구성과 형태에 흡사하다.
소학지희는 수많은 광대들로 하여금 이루어져 있는데 이는 청자를 제외한 고수와 창자로 이루어져 있는 판소리와는 사뭇 다르다. 그러나 조선조 후기로 넘어오면서 재정상의 문제로 나례가 폐지가 되자, 기존 광대들이 민중 속으로 들어가 지금의 판소리의 형태로 발전하지 않았는가라는 반론이 제기되었다. 생존의 문제에 있어 생활 기반을 보충하기 위해 필요한 인원만이 남게 되었고, 민중들이 쉽게 공감하기 위해 전문성을 길러 기존 소학지희의 모습에서 현재 판소리의 모습으로 변했다.
2.4. 판놀음 기원설
판놀음 기원설의 '판놀음'은 판과 놀음이 합쳐진 말로서 놀이꾼들이 일정한 대가를 지불받고 벌이던 놀이다. 판놀음은 조선조 후기에 성행하였는데, 그 구조가 판소리와 흡사하다. 판놀음의 창우(노래를 부르던 유랑 연예인) 집단의 광대소리와 사설의 형태들이 오늘날 판소리로 발전하지 않았는가 라는 물음에서 출발한 가설이 바로 판놀음 기원설이다. 판놀음 기원설은 최근에 등장한 설로서 판소리가 육자배기 토리 무악권 창우 집단의 광대소리에서 발생한 것으로 본다.
흥미롭게도 판놀음 기원설은 육자배기토리 기원을 인정하면서도, 무가기원설에 대해서는 인정하지 않는다. 무가와 판소리가 성음, 시김새, 장단이 다르고, 판놀음에 등장하는 단골의 복색과 판소리의 창자의 복색이 서로 다르다. 또한 단골 무가에서는 판소리에서 주로 공연되는 설화가 등장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러한 사실에 반론이 제기되었다. '산이패' '화랑이패'라고 불리는 육자배기토리권의 창우 집단들이 세습무가의 출신이거나 세습무가와 혈연적인 관계를 맺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판소리는 육자배기토리 무악권 창우 집단의 광대소리에서 발생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
3. 참고자료
최동현, 『판소리란 무엇인가』, 에디터, 1994
판소리학회, 『판소리의 세계』, 문학과지성사, 2000
고창 판소리 박문관, 「판소리의 기원」
ⓒWritten By Hwang ManBok, 2012
- 육자배기토리는 전라도 민요의 선율적 특징을 가리키는 말이다. 즉, "토리"라는 용어는 각 민요권의 선율적 특징을 나타내는 말인데, 전라도가 "육자배기토리", 경상도를 포함한 강원도, 함경도 등 동해안지방은 경상도의 메나리라는 민요의 전형성을 따서 "메나리토리"라 부른다. 경기도와 서도지방의 토리는 특정한 곡명을 사용하지 않고, "경·서도토리"라 부른다. 이처럼 한반도의 민요는 제주도를 제외하고 크게 세 민요권으로 구분된다. [본문으로]
- 육자배기토리의 발성법은 경기의 서정성, 서도의 콧소리에 비하여, 극적이고 굵은 목을 눌러내는 소리다. 음계의 구성면에서도 계면조인 떠는목(낮은음), 평으로 내는 목(중간음), 꺾는목(높은음)을 가지고 있다. 장단은 판소리와 산조의 장단을 많이 사용하고 있다. 그 중에서도 중모리(흥타령, 긴 농부가 등)와 중중모리(개구리타령, 자진 농부가 등)가 많이 쓰이고 드물 게 진양조(육자배기)와 자진모리(까투리타령)가 쓰이기도 한다. (국립국악원, 육자배기토리)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