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체자본에 대한 고찰 : 억압된 것의 복귀 - 황만복
요즘들어 몸짱, 옷짱이라는 말들이 많다. 이 말은 한 시대의 은어였다가 이제는 사람들이 열광하고 열망하는 단어로 변했다. 이제는 TV프로그램에 비치는 공인들뿐만 아니라 일반인들에게까지 이 단어에 물들어갔다. 건강해보이고 세련되어 보이는 것, 그것이 잘못되었다는 말이 아니다. 다만 그것을 통해 발생하는 문제점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보고자 한다.
몸짱, 옷짱이라는 단어는 전문적으로 육체자본이라는 단어로 설명할 수 있을 것 같다. 육체자본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큰 영향을 미치고 있는 단어다. 실제로 몸짱, 옷짱이라는 단어에는 화려함이 있겠지만 그 속에는 초라함도 함께 내재되어 있다. 그 말을 다시 빈부격차라고 할 수 있다.
대부분 사람들은 멋있는 옷을 입고 건강해보이는 몸매를 갖길 원한다. 그러나 그것은 '보여주기 위해서'라는 말이 붙는 순간, 문제가 되어버린다. 사실 우리가 살고있는 세계는 몸매가 다소 뚱뚱하거나 마르거나 하는 사람들, 의상에 크게 신경쓰지 않는 사람들이 대다수다. 그렇다보니 주변에서 붐을 일으키고 있는 몸짱과 옷짱의 유행은 동경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사실 이 동경이라는 말로 인해 처절하게 삶을 사는 이들이 많다. 자신의 외형을 꾸미기 위해 큰 빚을 지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그 빚을 갚기 위해 타락한 세계로 발을 들이는 이들의 일화도 우리는 어렵지않게 접할 수 있다. 이것은 결국 자신의 내면이 어둠 속으로 빨려 들어간 모습과 같다.
우리는 태어날 때부터 멋진 옷, 멋진 몸으로 태어나지 않는다. 벌거벗은 핏덩어리 몸으로 세상에 처음 눈을 뜬다. 그러나 살기 위해서 옷을 입고 몸을 키워야 한다. 그리고 자아가 확립되면서 생각이 자리잡히고, 그때부터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게 된다. 그리고 그것은 자기관리의 필요성을 느끼게하고 곧바로 행동에 옮겨 육체자본을 축적하게 만든다.
많은 사람들이 외형보다 내면을 추구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초능력자가 아닌 이상 우리는 마음을 읽는 능력이 없다. 결국 그 한계는 우리가 외형만을 통해 처음 본 상대의 속성을 파악할 수 밖에 없게 만든다. 외형에 따라 그 사람의 격을 쉽게 판단하고 일반화시켜버린다. 사실 여러 단체와 기관에서 교복과 정장을 단정해보인다는 이유로 정규의상으로 고집하는 이유도 이것과 같다.
시력보강을 위한 안경과 렌즈 등도 이제는 패션의 일부가 되었다. 시계나 모자, 악세서리 등을 착용한 사람들을 보면 우리는 흔히 브랜드가 어디 것인지부터 확인한다. 그것은 브랜드가 기능을 잡아먹은 듯한 모습이다. 수많은 광고에서 유독 의류광고들이 하나같이 의류의 기능성보다 브랜드를 중요시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것은 계급과 경쟁사회인 오늘 메이커를 중요시하는 바람이 사회 전반에 걸쳐 두루 일고 있기 때문이다.
공인들에게는 이런 육체자본이 일반인들보다 더욱 생계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물론 공인들의 능력과 대중을 끄는 매력은 이러한 육체자본의 눈길에서 조금 멀어질 수 있겠지만, 그렇지않은 신인과 알려지지 않은 무명의 공인들은 이러한 육체자본의 그늘에서 헤어나올 수 없다. 몸매를 단련한 스타들은 쉽게 대중에게 눈에 띄고 그만큼 광고나 프로그램의 섭외가 원활히 들어오기 마련이다.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화려한 옷을 입고 나온 공인의 이름이 쉽게 입에 오르내리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인지도 모른다.
문제는 이러한 것들이 일반인들에게까지 번져가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사실 목적을 위해 이런 육체자본을 축적한다고 하지만, 사실 타인의 시선을 얻기위한 마음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든다. 이러한 육체자본에 대한 관심은 앞으로도 떼려고 해도 뗄 수 없는 먼지들처럼 우리의 곁에서 벗어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순수한 내면은 어떤 화려한 외형보다 아름답다. 그것은 내면을 발견하는 일이 우리 가슴속에 깊게 있는 맑고 시원한 물을 마시는 일과 같은 일이기 때문이다.
예전에 무한도전에서 된장남 특집을 통해 멤버들이 화려한 정장을 입고 캐릭터를 설정한 적이 있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같이 불편하다고 말했다. 끝에 유재석은 나레이션을 통해 옷은 날개다, 그러나 자신에게 맞는 옷. 즉, 무한도전에게는 운동복이 어쩌면 날개가 아닐까라고 말했다. 우리의 날개는 과연 무엇일까. 어쩌면 맞지 않는 날개로 하늘로 비상을 꿈꾸는 것은 아닐까.
ⓒWRITTEN BY 황만복, 2010
ⓒPHOTOGRAPH BY 강애리, 2007, 에버랜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