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만식, 탁류 서평 : 남성인물들을 통해 본 가족주의 인식 ⓒ황만복
1. 서론
문학 작품에는 작가가 그 작품을 지을 당시에 가졌던 사상이나 가치관들이 담겨있기 마련이다. 또한 그러한 문학 작품을 읽어보는 독자들도 작품을 통하여 사상과 가치관들을 느낄 수 있으며 또 하나의 작품은 사회적으로 하나의 사상과 가치관이 되기도 한다. 문학은 그 시대를 관통하는 대중적 경향이나 이른바 '지식인' 집단이 가진 이슈가 어떤 것인지 알 수 있는 하나의 자료로서도 가능하게 된다. 이러한바 문학 작품을 연구하는 것은 그 작가가 가진 작품의 창작 동기나 작가 자신이 펼치고자 한 여러 가지 의견들을 알아낼 수 있다. 또한 이러한 것들은 여러 문학적 기법을 통해서 담겨져 있기 때문에 읽는 사람마다 그 해석이 다를 수 있다. 이러한 특징은 문학작품이 가진 매력 중 하나로 손꼽을 수 있다.
이 글에서는 채만식의 대표작이라고 해도 손색이 없는 작품인 『탁류』 를 통해서 그의 창작의 원동력이 어떤 것인지 알아보려고 한다. 특히 그중에서도 쉽게 지나칠 수 있는 부분에 대해 지적하고자 한다. 그 전에 탁류의 배경과 내용에 대해서 알아보자. 『탁류』 는 1937년 10월 12일부터 1938년 5월 17일까지 총 198회를 걸쳐 조선일보에 연재된 소설이다. 1939년 박문서관에서 단행본으로 출간된 '탁류'는 채만식의 대표작 중 하나로서, 여주인공인 초봉의 인생에 초점을 맞춘 내용이다.
ⓒ강애리, 2013
탁류의 주요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청순한 처녀인 초봉은 고용원을 지내던 정주사의 딸이다. 미두(米豆, 미곡의 시세(時勢)를 이용(利用)하여 현물(現物)이 없이 투기적(投機的) 약속(約束)으로만 팔고 사는 일)에 미친 아버지로 하여금 가세가 기울어지자 초봉은 약국 제중당에서 일을 하게 된다. 초봉을 호시탐탐 탐내던 약국 주인 박재호는 초봉을 서울로 유인하려고 하지만 그의 아내로 실패한다. 한편, 남승재가 늘 초봉을 따르고 있음을 그녀 역시 알지만, 매파(媒婆, 혼인을 중매하는 할멈)에게 홀린 부모님의 명령에 따라 은행원 고태수에게 시집을 간다. 고태수는 타락한 은행가이자 호색가였다. 어느 날 그가 유부녀와 간통을 하다 타살 당하는데, 같은 날 초봉은 꼽추인 장형보에게 강간을 당하게 된다. 이후 그녀는 무작정 군산을 떠나 서울로 발길을 향한다. 서울로 가던 중 초봉은 박제호에게 유혹을 당하고 몸을 바친다. 그 후 초봉은 박제호의 첩이 되어 그와 함께 동거하게 되고, 얼마 후 누구의 자식인지 알 수 없는 딸 송희를 낳는다. 그러나 이후 장형보가 다시 나타나 박제호에게 초봉과 그녀의 딸이 자기의 아내와 자식이라고 우기자 박제호는 그 상황을 흔쾌히 받아들이며 초봉을 버린다. 결국 초봉은 장형보와 동거하면서 고통스럽게 나날이 살아가던 중, 결국 송희를 괴롭히는 장형보를 보고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맷돌로 눌러 죽인다. 그리고 계봉과 승재의 권유에 결국 그녀는 자수를 결심한다.
▲ 1937년 10월 12일부터 1938년 05월 17일까지 조선일보에 연재된 채만식의 『탁류』 ⓒ구글이미지
일반적으로 『탁류』 라는 작품을 분석할 때에는 여자 주인공인 '초봉'의 처지와 상황, 혹은 그 성격을 분석하고 해석을 통해서 작가가 가진 여성의식이나 당대의 신여성, 가족주의 일면을 파악하려고 한다. 그러므로 그와 상대했던 여러 남성 인물들에 대한 분석이 소홀해 질 수 있다. 이 글의 전제와 방향은 『탁류』 에 등장하는 주요 남성인물들의 성격과 태도를 통해서 작가가 지니고 있던 가족주의의 관점에 집중하고자 한다. 이로 인해 채만식의 문학세계가 어떻게 형상화 되었는지를 파악하고자 한다. 특히 채만식이라는 개인의 여러 사건과 개인사가 작품의 어느 면과 공명하는지 알아보는 것이 주된 고민이라 할 수 있겠다.
2. 채만식에게 있어서 '아버지'의 존재
이 글에서 주로 논의하려 하는 것은 작품에 등장하는 남성인물에 대한 점이다. 이것은 작가의 아버지 혹은 아버지로서의 작가 자신으로 투영된다는 전제하에 이 논의를 시작하려 한다. 가족주의의 관점에서 가족의 한 구성원인 아버지라는 존재가 작가에게 어떻게 인식되어 있는가 알아보는 것이 그 출발점이라 하겠는데 채만식이라는 작가의 아버지는 어떤 인물이었을까.
이 글에 나타난 채만식의 아버지의 성격과는 달리 채만식은 그의 아버지가 겪은 하나의 사건으로 인해서 유학길에서 고향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그것은 부친이 수리조합이 생기면 공짜로 뺏긴다는 낭설이 돌자 헐가에 방매하였는데 그 후 땅값이 폭등하여 울화가 복받쳐 토혈까지 했다고 한다. 게다가 그의 부친이 미두에 손을 대어 아주 알거지가 되었다고 하는 점이다. 이런 아버지에게 결혼까지 강요당하며 실패한 결혼생활을 이어가게 된다.
또한 채만식은 아버지로서의 역할도 충실히 해내지 못한 듯하다. 첫째 부인과의 결혼 후에 서울에서의 하숙 중 하숙집 딸과 동거하여 자식을 두었는데 그 자식들이 소년원에 가게 되는 모습을 보였고 첫째 부인이나 동거하던 여자 말고도 강화에 사는 C라는 여인에게 마음이 가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그 마음은 결실을 맺지 못하고 C는 다른 남자와 결혼하고 말았고 그로 인해서 하숙집 딸과의 동거에 심리적 동기가 되었다고 한다.
▲ 백릉 채만식 작가(1902-1950) ⓒ구글이미지
비관적으로 이어지는 채만식의 개인적인 사건과 상황은 그의 작품에도 반영되었다. 그의 작품에서 찾아볼 수 있는 냉소와 풍자들은 작가 개인의 경험에서 기인한다고 해도 무방할 듯하다. 그 중에서도 서울 생활과 결혼생활이 별도로 이루어지고 있는 모습은 단편 『레디메이드 인생
』, 『태평천하』 등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특히 『레디메이드 인생』 의 결말에서 어린 아들을 인쇄소에 취직시키는 일방적인 P의 선택은 작가 자신이 처했던 상황이 반영되었다고 할 수 있다.
ⓒ강애리, 2010
따라서 『탁류』 에서 등장하는 초봉의 부친인 정주사라는 인물은 채만식의 경험과 배경을 통하여 만들어졌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중산층 부류에 속했던 초봉의 집이 정주사가 미두에 빠진 바람에 가세가 기울어졌다는 내용은 채만식의 아버지와 동일한 인물처럼 느껴지게 한다. 또, 채만식이 아버지에게 결혼을 강요당하며 결혼을 하게 되는 모습 또한 정주사와 초봉의 관계와 동일한 장면처럼 느껴진다. 이렇듯 탁류는 채만식의 개인사를 투영한 작품으로서 채만식의 가치관과 사상, 그리고 당대의 사회상에 대해서 날카로운 시선으로 비판하고 있는 작품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3. 『탁류』 의 남성들과 가족에 대한 정의
채만식의 장편소설 『탁류』 에 등장하는 중요한 남성인물로 정주사, 박제호, 고태수, 장형보, 그리고 남승재를 들 수 있다. 이들 인물의 성격과 작품속의 상황을 들어 작품을 분석해 나가보려 한다.
초봉의 부친인 정주사는 공부를 꽤 하고 신학문도 했다. 말하자면 당시에 공부 좀 했다는 축에 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네 남매의 아버지이자 한 아내의 남편인 동시에 가장이다. 그러나 이 인물은 자기 손으로 돈을 벌지는 못할망정 미두에 빠져서 아내와 큰 딸이 벌어오는 돈을 축내는 한심하고 무력한 인물로 묘사된다. 특히 그의 성격을 가장 여실히 드러내는 부분은 고태수와 남승재를 두고 누구에게 큰 딸을 시집보내야 장사 밑천이라도 한 몫 잡을 것인가 고민하는 부분이다. 이는 전통적인 가족주의나 가족이라는 집단의 윤리의식이 붕괴되었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는 장면이다. 딸을 팔아넘기듯이 고태수에게 시집보내는 모습은 마치 채만식의 부친이 그를 강제로 혼인시키려 한 사실과 일치된다. 정주사는 사람의 됨됨이나 고태수의 성격이나 배경들을 자세히 알아보지도 않고 소문으로 들리는 그의 이야기만을 듣고 딸을 시집보낸다. 근대에는 부모가 정해주는 사람과 혼인을 하는 일보다는 자유연애가 젊은이들 사이에서 성행하고 있었다. 그러나 초봉과 고태수의 혼인은 그렇게 서로의 강력한 의지가 아니었던 것이다.
ⓒ강애리, 2010
그렇다면 고태수라는 인물은 어째서 그렇게 쉽게 결혼을 한 것일까. 그는 은행업무를 통해서 자금을 빼돌려 미두를 하고 결혼을 한다. 그리고 하숙하고 있던 한참봉의 안주인과 불륜을 저지르기도 한다. 이런 인물이 쉽게 결혼을 한 것은 그의 자유연애의 한 방향이었을 뿐이다. 그는 가족을 이루고 행복한 삶을 살려고 한 것이 아니라 그저 초봉을 한번이나 자기 품에 안으려 했을 뿐이다. 또 '죽으면 그만'이라는 생각에 타락한 인생을 살아가는 인물이다. 고태수라는 인물은 어쩌면 채만식의 욕망이지 않나 싶다. 채만식은 첫째 부인과 혼인 후에도 하숙집딸과 동거하여 자식을 둔 모습을 보이는데, 이 모습에서 첫째 부인과의 혼인에 만족하지 못했던 채만식 또한 '죽으면 그만'이라는 생각을 가진 것은 아니었을까.
박제호와 장형보는 같은 맥락에서 바라볼 수 있다. 전근대적인 전통적 가족주의의 관점에서 생각한다면 한번 혼인을 한 여성과 다시 혼인을 한다는 것은 쉽게 허용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이 두 인물은 그런 가치관과는 상관없이 자신의 욕망을 채우기 위해서 겉으로만 가족의 형태를 유지하는 하나의 '살림'을 차리게 된다. 그 욕망은 아름다운 여인을 가지려 한 것인데 이것은 이미 혼인을 한 여성을 향한 것이라는 점이 두 인물이 공통적으로 보이는 모습이다. 다만 박제호는 이미 혼인을 하였고 장형보는 혼인을 하지 않았다는 점일 뿐이다. 하지만 이 인물들이 당대의 사회 현실만을 반영한다고는 보기 어렵다. 채만식 또한 첫째 부인과 결혼 후에도 서울에서 하숙 중 하숙집의 딸과 동거하여 자식을 둔 모습을 보인다. 이 부분으로 보아 박제호와 장형보가 비열한 인물처럼 그려지고 있지만, 채만식 스스로 자신의 경험이나 가치관을 담아낸 인물인 것이다.
▲ 채만식 작가의 『탁류』 ⓒ구글이미지
위의 인물들과는 다르게 남승재라는 인물은 다른 면모를 보인다. 의사자격을 얻기 위해서 일하고 스스로 어려운 사람들을 돕는 그의 성격은 작품의 후반에 가면 계봉이와의 연애 장면이 등장하고 처음으로 사랑의 감정을 가진 초봉과 연애를 하는 계봉 사이에서 갈등하는 인물로 그려진다. 작품의 결론에서는 승재가 초봉과 계봉 사이에서 어떻게 되었는지 나타나지는 않았다. 그러나 결론적으로 처음으로 마음을 가졌던 초봉과의 연애 혹은 결혼은 사실상 실패하고 말았다. 그것도 자신이 죽일 수도 있었던 고태수라는 타락한 인물과의 결혼으로 인해서다. 이는 위에서는 채만식이 C와의 결혼은 결국 실패하였다고 말한바 있는데 이런 맥락과 함께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여기까지 『탁류』 의 남성들에 대해 분석해보았다. 여기에 나타난 작가의 가족의식이나 이야기 속의 가족상은 무엇일까. 일반적으로 떠올릴 수 있는 화목하고 온화한 가정의 모습이었느냐 묻는다면 그 답은 아니라고 하겠다. 그의 작품 속에서 가정이라는 것은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다.
채만식에게 가족은 아무것도 없는 빈 기호였다. 초봉이 만난 가족 구성원들과는 자신이 원했던 이상적인 가정을 꾸리지 못했다. 아버지로 인해서 기울어버린 가세를 다시 일으켜 세우기 위해 약국으로 일을 나가면서 헌신적으로 가정에 보탬이 되고자 하였다. 그러나 자신의 미래는 본인이 가졌던 고민과는 상관없이 부모의 뜻에 의한 결혼을 맞이한다. 게다가 그런 결혼 생활이 행복하게 이어져 나가지 못하였고, 결국 아버지의 친구나 죽은 남편의 동료와 살림을 꾸리는 비극적이고 비윤리적인 선택을 하게 된 모습을 볼 수 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초봉이 만나는 여러 남성인물들은 비상식적일만큼 일반적인 가족의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탁류』 는 단지 그 당시의 가족주의의 인식만을 보여주지 않는다. 가족을 나무에 비유하자면 이 체계는 뿌리로써 대지를 지지고 서 있는 하나의 구조물이라고 볼 수 있다. 대지에 뿌리를 내리고 열매를 맺고 또 다시 그 열매에서 하나의 뿌리를 내리는 나무가 되는 것이 바로 가족이다. 하지만 채만식도 초봉도 그런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 특히 그러한 모습을 만들게 원인을 제공한 것은 그를 둘러싼 남성인물들과, 그 당시를 관통하고 있던 남성들의 가족의식에 대한 새로운 인식이 적나라하게 드러나 있다고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이런 점을 보아서 채만식에게 가족은 온전한 형태로 존재하는 공동체의 모습이 아니었다. 또, 채만식 역시 가족의 한 구성원으로서 그러한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 이러한 작가의 인식은 작품으로 이어졌고 작가 자신이나 그 당시의 가족주의 또한 변화하고 있음을 시사하고 있는 것이다.
채만식은 당시의 가족주의 인식이 과거로서만 존재하지는 않는다는 주장을 펼치고 있는 것일지 모른다. 현재 혹은 현대의 가족주의의 인식은 그 과거로부터 유전되어 더욱 더 심화되는 것이다. 작가가 보여주는 소설속의 가족주의 관점은 이러한 시대적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이것이 텍스트에 반영되어 있음을 확인할 수 있도록 한다.
4. 결론
이 글은 『탁류』 의 등장인물들의 성격과 작가 채만식의 개인적인 사건들의 연관성을 통해서 작가가 가진 가족주의의 인식이나 창작의 동기가 어땠는지 알아보려한 시도였다. 작품속의 인물들이 그가 가진 인식의 부산물이라고 하기에는 어려운 점이 분명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가 가진 인식이 그의 작품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그가 창작한 작품 속에서 이러한 인식이 일관성 있게 펼쳐지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었다.
다시 한 번 되짚어 보자면 채만식의 가족주의인식이 작품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알아보려 했던 작업이 이 졸고의 내용이라 하겠다. 이를 작품 속에 등장하는 인물과 작가 개인의 경험을 비교하여 분석하려 노력했지만 분명 미비한 점이 존재하고 아직도 정확하게 그 본직에 접근하지 못했다는 느낌을 남긴다. 그러나 분명 더 넓은 시각으로 작품과 작가를 바라보며 하나의 세계관을 인식한다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을 알리며 이 글을 마친다.
참고문헌
권유리야, 『가족주의에 나타난 식민과 탈식민의 두 징후』
김상선, 『채만식론』
김혜영, 『한국의 가족주의와 여성 인권』
이영자, 『한국 사회의 가족주의와 페미니즘』
ⓒ글 김훈겸, 황만복, 2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