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포스팅은 2010년 도서 『웬 아이가 보았네(현장 비평가가 뽑은 올해의 좋은 소설 2010)』에 대한 평론으로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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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꽃은 무엇일까. 나는 자신 있게 장미라고 생각한다. 누군가에게 특별한 선물을 할 때 가장 먼저 생각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장미는 왜 아름다울까?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나는 가시가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가시가 있어야 아름다운 꽃. 많은 사람들은 장미에 난 가시가 얼마나 슬픈 의미인지 잘 알지 못한다. <웬 아이가 보았네(현장 비평가가 뽑은 올해의 좋은 소설 2010)>는 바로 이 장미와 가시의 관계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 같다.
이 소설은 한 아이의 시선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아이는 예술인 마을에 살고있다. 아이가 바라보는 예술인 마을은 밤하늘에 반짝이는 별, 붉게 타오르는 석양, 달빛으로 물든 푸른 바다처럼 아름다운 곳이다. 그러나 실상은 그렇지 않다. 예술인 마을에 살고 있는 주민들의 행동은 아름다움보다는 오히려 추악함과 비겁함에 가깝다. 처음부터 그랬던 것인지, 아니면 요리사 부부가 이 마을로 이사한 후부터인지 알 수는 없다.
어느 날 예술인 마을에 요리사와 그의 아내가 이사를 왔다. 요리사의 아내는 여류시인이었다. 정식적으로 등단한 시인은 아니었지만, 그녀는 지적이고 감성적이었다. 그녀의 이런 모습은 마을 주민들의 마음을 사로잡는데 부족함이 없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를 동경하는 사람들도 늘었다. 하지만 이것은 비극의 시작이었다. '쇠뿔도 단김에 뺀다'는 말 대신 '쇠뿔도 당기며 뺀다'라는 그녀의 작은 말실수가 마을 전체에 가시덤불 같은 갈등을 불러왔다. 요리사와 그녀의 아내가 살던 뾰족집, 그들이 심은 들장미, 그리고 그들을 시기하는 뾰족한 가시까지. 한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뭔가 뾰족한 느낌이 날 만큼 마을사람들은 그들을 무자비하게 헐뜯었다. 그녀를 동경했던 사람들도 마냥 편하지만은 않았다. 그녀와 친했다는 이유로 그들 역시 비난받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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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장미는 아름답지만 가시가 많다. 해충들의 접근을 막기 위해서 가시가 있다는 말을 어느 책에서 본 것 같다. 예술인 마을 주민들은 그녀를 깎아내리기 바빴다. 마치 가시없는 들장미를 괴롭히려는 해충들처럼. 그래서 들장미는 고통스럽게 제 몸을 찢으면서 가시를 냈다. 그 가시는 해충은 물론, 자신을 기쁘게 할 나비와 벌도 쫓아낼 텐데. 들장미는 이러한 고통과 외로움 속에서도 기어이 꽃을 피워낸다. 그래서 장미는 결코 아름답지 않을 수 없다.
예술인 마을. 그곳에는 뾰족집이 있었고, 들장미 같은 한 여자가 한때 살았던 곳이다. 아름답다는 이유로 시기와 질투를 받아야 했던 곳이다. 그리고 그것들이 그녀를 떠나게 만들었다. 사실 우리가 살고있는 이 세상도 예술인 마을과 별반 다르지 않다. 우리는 함께 살아가면서 때때로 누군가를 동경하고, 때때로 누군가를 미워한다. 누군가로부터 상처를 받기도 하며,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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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을 읽고 난 후, 왜 이렇게 허무한 마음이 들까. 그건 아마도 웬 아이가 보았기 때문이다. 아이는 아직 이 세계가 자신의 미래가 될 것이라고 알지 못한다. 냉정하게도 세상은 장미를 해치는 해충들이 많다. 그리고 그 해충만큼 그것을 지키는 뾰족한 가시들이 있다. 미래의 아이는 얼마나 많은 가시를 안고 살아가야 할까. 사실 많은 꽃들이 아름다운 꽃봉오리를 피워보지도 못한 채 말라죽기도 한다. 그리고 그런 일들이 흔하디 흔한 것이 바로 우리의 세상살이다. 그중의 일부를 웬 아이가 보았다. 그리고 우리는 웬 아이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의 세상을 되돌아보고 있다.